최소한 나에게 있어서 방금 끝난 이 경기는 월드컵 결승전이라는 의미보다는,
어쩌면 지단의 은퇴 경기라는 생각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다. 누군가 그러더라. 지네딘 지단에게 있을 수 있었던 최악의 은퇴 경기라고. 간혹 지단이 제 분을 못 이겨 그런 우발적 행동을 했던 상황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설마, 오늘, 그러니까 자신의 현역 은퇴 경기이자 월드컵 결승전에서, 그 분을 참지 못하고 돌출 행동을 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마테라치가 지단에게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모른다. 단지 TV 화면에 비춰진 대로 그 둘 사이에 어떠한 말이 오고갔다는 것 밖에는 알 수 없다. 지단이 이태리어에 능숙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단 역시 꽤 오랜 기간 유벤투스에서 선수 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지라, 대화가 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할 뿐이지. 어쨌든, 지단은 그 분을 참지 못했고, 그 결과 퇴장을 당하면서 잘 이끌어오던 경기의 흐름 자체를 바꾸어놓았다. 무슨 상황인지는 본인이 아닌 이상 모르겠지만, 그게 무엇이든간에 자신의 위치가 프랑스 대표팀 내에서 어떠한 의미인지, 아니 단지 11명이서 죽기살기로 연장전까지 그것도 우세하게 끌어오던 경기에서 한 명이 불명예스러운 행동으로 퇴장을 당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 피치 위에서의 폭력 행위는 무조건 퇴장이라는 사실조차도, 순간적으로 잊어버릴 정도로 참기 힘든 거였을까. 아니면 그 모든 걸 감수하고서라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걸까. 대체 어째서 그런건가요? 진심으로 묻고 싶다. 하지만, 대답은 듣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어느 쪽이든 지네딘 지단은 자신의 아름다울 수 있었던 마지막 경기를 일종의 희극으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분명 지네딘 지단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오르내릴 멋진 선수이지만 오늘의 이 일로 인해 다른 의미로도 꽤 많이 회자되리라고 생각한다. 어쩐지 눈물이 났다. 죽어라고 뛰던 프랑스 선수들의 눈물을, 그리고 차마 눈물조차 흘릴 수 없어 억지로 참아내던 트레제게의 얼굴을 보면서 그냥, 어쩐지, 조금 화가 난 것 같다. 다른 누구도 아닌 지네딘 지단에게. 그가 성인군자이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나로서는 아직도 마테라치가 정말 심한 말을 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라고 지단을 대신해 변명을 생각해내고 있지만, 그래도 참아줬으면 지금 피파컵을 들고 입을 맞추고 있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하니까. PK까지 끌고 가서 진 것이니 지단의 탓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팀의 정신적 지주가 그렇게 무너져내리면 다른 선수들 또한 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어찌됐든 내 예상대로 우승해서 내기에 이기게 해 준 이태리 선수들에게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사실 내기는 이태리에 걸어놓고도, 심정적으로 프랑스에 은근히 기울었던 건 역시 지단 때문이었는데. 어쨌든 특히 마음 고생 심할 유벤투스의 선수들에게 몇 배로 더 축하해주고 싶다. 그렇게 씁쓸하던 와중에서도 TV 화면에 잡히는 알레와 정말 괴물같이 잘해준 부폰과 칸나바로, 잠브로타를 보면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비에이라, 튀랑과 트레제게를 보면서 어떻게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지만.(그러고보니 유베 선수들이 참 많았네;)

어쨌든 2006년의 여름은 이렇게 끝이 나고, 다시 곧 시작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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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銀_Ry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