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명의 선수들 중에 우리 주전급 선수라고 할 수 있는 선수는 두 명 뿐이었지요. 예상을 뒤엎고 첫 퍼스트팀 선발 데뷔를 무려 챔피언스 리그에서 하게 된 우리 아론군은 겨우 17살. 애기죠, 이 정도면 OTL 어쨌든 이런 스쿼드였다는 것에 더해서 경기 결과가 어떻든 ㅡ질 경우 기분이 더러워진다라는 것을 제외하면ㅡ 별다른 데미지가 없는 경기였기 때문에 경기를 꽤나 침착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경기가 매우 재미가 없었다는 것도 이유가 되겠죠. 어쨌든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했고, 나름대로는 최근의 심란한 마음을 좀 정돈해주는 경기였습니다. 평소처럼 줄줄줄 써내려갈까 하기도 했는데 그러면 제가 하고 넘어가겠다 결심한 말들이 의미가 없어질 것 같아서 끊어서 합니다. 그래도 기니까 접어두기.
1. 타바노는 사겠다는 곳이 있을 때 팔아버리는 게 낫겠습니다. 이적 후 첫 선발 출장. 그것도 고향인 이탈리아. 게다가 챔피언스 리그. 거기다 어려운 팀의 상황까지 고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 스피릿밖에 내어주지 못한다면 아무리 우리 상황이 어려워도 필요 없습니다. 여기저기 들리는 소문들까지 굳이 끄집어내가면서 아직은 내 팀 선수인 타바노를 욕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만 팀에게, 동료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게으른 선수가 뛸 수 있는 팀이 아닙니다, 발렌시아는. 이젠 발렌시아의, 무엇보다 타바노의 상태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주제에 그저 타바노를 뛰게 하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소리 듣는 것도 짜증납니다. 뛸만한 상태여야 뛰게 하지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훈련의 반도 제대로 소화 못해내는 선수를 어떻게 씁니까? ...아, 뭐, 어쨌든 아예 못하는 선수는 아닌거 같으니 누가 사겠다고 할 때 파는 것, 절대로 반대할 생각 없습니다.
2. 사실 키케의 스쿼드는 종종 의문입니다. 물론 ㄹㄴㅇㄹ 같은 수준이 아니라 늘 조금씩 나였으면 이랬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달까요. 여튼 키케는 로페즈-세라의 왼쪽은 버리기로 작정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선발 보고 정말 놀랬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내보낼 리가 없잖아요....(어둠) 어쨌든 로페즈씨가 경기 내내 보여준 화려한 미스들의 향연에 대해서 굳이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다 기억도 안나구요. 로마가 아니라 풀 스쿼드의 AT나 세비야였다면 0 - 1 로 안 끝났을겁니다. 오죽하면 호아킨이 계속 왼쪽으로 와서 뛰었을까요. 오른쪽이 전문인 두 선수 가운데에 하나에게 왼쪽을 맡길 거였다면 호아킨이 맡는 쪽이 나았을텐데요. 뭐 세라에 대해서야 할 말이 없습니다. (급기야 솔솔 떠도는 카네이라 복귀설이 사실이길 간절히 바라는 이 마음. 카네이라, 제가 알기론 확실히 왼쪽에서도 플레이 가능하지요.)
3. 우리 아론이 좋네요. 크로스를 올리다가 부상을 당해버렸지만 T_T 확실히 촉망받는 재능이 맞기는 맞나봅니다. 순간적인 움직임, 감각이 좋아요. 게다가 의욕적이고, 열심히 뛰려고 하는 모습은 약간의 서투름 정도, 가볍게 덮어주고도 남습니다. 얼굴만 봐도 완전 애기지만 표정이 좋습니다. 그리고 파야르도. 바라하님과 함께가 아닐때에도 제법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네요. 리가에서의 경험들이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외에 뛰었던 애들은 나쵸 인사, 로메로, 코르코레스. 코르코레스는 너무 짧게 뛰어서 따로 할 말이 없고, 나머지 둘도 뭐 별로 할 말 없습니다. 챔피언스 리그 데뷔 축하한다 ㄱ-
4. 호아킨. 그 와중에도 반짝반짝 빛나더이다. 왼쪽, 오른쪽 가리지 않습니다. 아무런 도움도 안되는 스트라이커를 앞에 두고(혹은 보이지 않거나 혹은 오히려 뒤에 있는 등 만행을 저지르는 가운데에서) 고군분투.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축구는 11명이 뛰는 팀스포츠. 한 개의 구슬이 아무리 빛을 발한다해도 목걸이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저 빛나는 하나의 구슬에 불과할 뿐이죠. 그리고 우리 완소 알비올군 T_T 여전히 가끔은 공황에 빠지긴 하지만 정말 눈물 났습니다. 아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이번 시즌의 모든 경기들을 다 합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뛰고 있는 선수가 알비올입니다. 손에 칭칭 감긴 붕대도 속상하고, 정말 누구보다도 쉬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의 발렌시아는 알비올이 없으면 안되니까요. 확실히 주전이고 비주전이고, 이걸 가르는 건 실력과 스피릿. 쉽사리 로테이션을 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 있는 겁니다. 아무리 제법 두텁게 스쿼드를 만들었다고 해도 말이죠.
5. 타바노의 얘기와도 일맥상통하는 얘기지만, 비아나에게도 더이상 기대하지 않습니다. 시즌 초반, 키케의 구상에 들지 못해서 플레이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임대니 이적이니 그때만해도 이번 겨울에 팀을 떠나게 되는 게 거의 확실시되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지금은 그때와 비교한다면 천지차이의 기회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비아나에게 있어서 둘도 없는 찬스. 만약 정말로 발렌시아에 남아서 뛰고 싶다는 마음이 그에게 있다면 조금은 다르겠지요. 스피릿 부족. 이게 만약 제 오해라면, 스피릿이 가득 찬 상태로, 정말 열심히 뛰고 있는건데 제가 어처구니없이 오해를 하고 있는 거라면,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기대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테지만요. 전 그 정도로 비아나의 포텐셜이 낮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