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관중 앞에서 노래하는 지경에…  PK전보다도 어려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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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에서는 골키퍼가 실수했을 때, 자주「cantar 해버린다」라는 표현을 하는데(주 : cantar 이라는 것은「노래하다」라는 의미이지만, 구어로는 다양하게 쓰여지는 편이다), 사람들 앞에서 정말로 노래한 경험은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한번도 없었어. 그런데 바로 요전날, 나는 키퍼 글러브 대신에 마이크를 들고 어느 스테이지에 오르는 지경에 이르러버렸어. 그건 라디오 방송국의『카테나 셀』이 월드컵의 스페인 대표팀을 게스트로 맞아서 특별 이벤트를 한다는 사건이었는데, 여기에는 나 말고도 토레스, 세르히오 라모스, 비야, 이니에스타, 그리고 루이스(아라고네스 감독)도 초대 받았지. 거기에 더해서 지금 스페인에서 엄청나게 인기있는 4팀의 아티스트도 출연해서 이벤트는 꽤 불타오르고 있었어.

  "사건" 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 에바
(원래 풀네임이지만 확실한 부분만.)가 노래하고 있을 때에 일어났어. 방송국의 스태프가, 「이케르, 스테이지에 올라가서 함께 노래해볼래?」라고 말해줬는데 말야. 물론 처음에는 농담이라고 생각했고, 웃어 넘겼지만, 점점 묘한 분위기가 되어버리고 말았어. 결국 무대에 올라가게 되어버렸지. 그 다음은 이제 될대로 되라 였어(웃음). 차를 운전할 때에 자주 흥얼거리던 곡이었고, 어떻게든 노래하는 것은 할 수 있었지만 정말 엄청 긴장해서 땀범벅이 되었었어. 어쨌든 수록 회장인 스포츠 팔레스에는 만 3천명의 관중이 있었다니까!! 목소리가 떨리고, 실제로 약간 음정도 벗어나버렸고…….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이 이렇게 용기가 있어야 하는 일이라는 걸 몰랐었어. 이벤트가 끝난 후에 사회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어.「PK전의 골 문 앞에 서 있는 것과,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 어느 쪽이 어려워요?」
라고. 여러분이라면, 내가 뭐라고 대답했을지 물론 알고 있겠지요(웃음).

  그리고 그런 사건이 있고 며칠 후 나는 25살의 생일(5월 20일)을 맞이했어. 즉 사반세기──. 뭐랄까, 꽤 나이를 먹은 기분이야. 25번째의 생일 즈음에, 스포츠지인『AS』로부터의 제안으로 나의 인생에서「잊어버릴 수 없는 25가지 사건」을 골라주면 좋겠다고 부탁받았어.
「좋은 아이디어잖아!!」라고 처음에는 생각했지만 실제로 고르려고 해보니까 꽤 어려운 작업이었어. 그래도 이 25년간을 재차 되돌아 볼 수 있었고, 자신을 다시 바라볼 수 있었으니까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해.

  가장 처음에 기억해 낸 것은 태어난 고향인 모스토레스
(마드리드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20km)에서 보냈던 유소년시대. 당시에는 근처의 친구들과 언제나 공을 찼었어. 그들하고는 지금까지도 사귐이 이어지고 있어. 친구들하고뿐만이 아니라 그 때에는 아버지하고도 함께 축구를 했어. 무엇보다 슛을 때리는 것은 언제나 아버지였고, 나의 역할은 키퍼뿐. 뭐, 그걸 계기로 해서 언젠가부터 키퍼라고 하는 포지션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다음은 지금까지 몇 번인가 얘기했었던 것 같은 일인데 1997년의 U-16 유럽 선수권에서 우승했던 때의 일, 그 1년 후 마드리드의 톱 팀에 처음으로 소집되어서 노르웨이에 갔었던 때의 일── 확실히 그 때에는 아버지에게 수트를 빌렸었어 ──, 그리고 99년, 산 마누스(아틀레틱 빌바오의 본거지)에서 리가 데뷔를 장식했던 때의 일……. 모두가 평생 잊어버릴 수 없는 순간이야. 99년의 월드 유스 우승, 2000년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거기에 더해 그 다음해의 리가 에스파뇰라 우승까지 역시 타이틀을 따낸 기억이 많을까나.


▨ 규모가 확대된 여름 캠프. 올해는 4개의 마을로 나뉘어… 

  물론, 이 25년간을 돌이켜보면, 좋은 것만 있었던 건 아니야. 특히 01 - 02 시즌은 세자르(현 사라고사)에게 레귤러의 자리를 빼앗겨서 벤치에서 괴로워하는 매일을 보냈었어. 당시 22살이었던 나에게 있어서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이제 두 번 다시 골 문 앞에 설 수 없는 게 아닐까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기도 있었어.하지만 그 괴로운 시즌도 마지막은 웃는 얼굴로 매듭 지을 수 있었어. 글래스고에서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 세자르가 도중에 부상을 당해서 급하게 차례가 돌아왔어. 그 후에 다행스럽게도 나는 몇 개인가 빅 세이브를 보여줘서 클럽에게 있어서 9번째가 되는 챔피언스 리그 제패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할 수 있었지. 실패했던 건 분명 출장할 수 없을거라고 생각해서 이 시합에 어머니를 초대하지 않았던 것. 우승을 했다고 말하기 위해서 시합이 끝나고 난 뒤에 그녀에게 전화를 했었지만, 기쁨으로 가슴이 가득 벅차올라서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던 걸 기억하고 있어. 괴로운 기억이라고 하면 2002년의 한일 월드컵도 그래. 준준결승에서 PK전 끝에 한국에게 졌었는데, 뭐어 주심의 이해할 수 없는 판정도 있었고, 어쨌든 뒷맛이 나쁜 패전이었어.

  이렇게 대충 25년의 역사를 되돌아봤지만,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순간은「이케르 카시야스의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을 봤을 때」야. 나 자신도 한편으로 그런 식으로 동경하는 선수의 유니폼을 입고 사인을 받고 난 후에 기뻐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고, 어쩐지 감격해서 소름이 돋거나 했었으니까. 그래서,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 시작한 프로젝트『이케르 카시야스 캠퍼스』가 올해도 눈 앞에 다가와있어. 이 이야기는 전에도 했던 적이 있었지? 내 부모님이 태어나신 나바라쿠르스(카스티야 지방의 아비라 현)의 마을에서 6 ∼ 14 살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말하자면 여름 스포츠 캠프야.

   매년 7월에 열리고 있는 이 캠프도 올해로 3년째. 처음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라고 생각했었지만, 덕분에 매년 규모가 확대되어왔어. 이젠 나바라쿠르스 마을만으로는 페이스를 맞출 수 없게 되어버려서 올해부터는 4개의 마을로 나누어서 열릴 예정이야. 그래그래, 아비라 현 의회의 협력도 있어서 올해부터 모든 시설에 전기가 들어오게 되었고 피치의 잔디도 새로 깔고, 로커룸이나 수영장도 반짝반짝거리게 됐어. 이번 여름은 스페인에서 300명 이상의 아이들이 올 예정이지만, 그레도스 산맥의 멋진 자연 속에서 스포츠를 통한 즐거운 추억과, 많은 친구를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좋겠어. 축구뿐만이 아니라, 골프나 승마, 그리고 하이킹 같은 것도 할 수 있으니까 분명 마음껏 즐길 수 있을꺼야.

Posted by 銀_Ryan :